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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소리는 어떻게 수백 km를 갈까, 바닷속에 숨은 소리의 고속도로

고래 소리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전달된다는 얘기가 과장인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물의 성질과 저음, 그리고 바닷속 특별한 수심대까지 여러 조건이 맞물린 결과였다. 원리와 함께 요즘 바다가 시끄러워지면서 생긴 문제까지 정리했다.

고래 소리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전달된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솔직히 과장 아닌가 싶었다. 육지에서는 아무리 크게 소리를 질러도 몇 km만 지나면 거의 안 들리는데, 바닷속에서는 대체 뭐가 다르길래 그렇게까지 멀리 간다는 건지 궁금했다. 찾아보니 고래가 특별히 목청이 좋아서가 아니라, 바다라는 환경과 고래의 몸이 꽤 절묘하게 맞물린 결과였다.

물속에서는 소리가 4배 넘게 빠르다

공기 중에서 소리는 1초에 약 340m를 간다. 바닷물 속에서는 1초에 약 1,500m로, 네 배가 훨씬 넘는다. 물 분자는 공기보다 훨씬 촘촘하게 붙어 있고 잘 눌리지 않아서, 한쪽에서 생긴 진동이 옆으로 빠르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속도만 빠른 게 아니라 에너지 손실도 적다. 공기 중의 소리는 퍼져나가면서 금방 힘을 잃지만, 물속에서는 같은 소리가 훨씬 먼 거리까지 힘을 유지한다. 바다에서 공기의 역할을 하는 건 빛이 아니라 소리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수십 미터만 내려가도 빛은 거의 닿지 않지만 소리는 수백 km를 가니까, 바다 생물들이 소리에 크게 의지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공기와 바닷물 속 소리 전달 속도 비교

저음일수록 멀리 가는데, 큰 고래 소리가 딱 그 저음이다

소리는 높을수록 바닷물에 빨리 흡수된다. 돌고래가 내는 날카로운 고음은 가까운 거리에서 먹이를 찾는 데는 정확하지만 멀리 가지 못한다. 반대로 낮은 소리는 흡수가 훨씬 적어서 먼 거리까지 살아남는다.

큰 고래들의 소리는 바로 이 저음 영역에 있다. 대왕고래나 참고래는 10~40Hz 정도의 아주 낮은 소리를 내는데, 사람이 겨우 들을 수 있는 가장 낮은 소리가 20Hz 언저리라는 걸 생각하면 상당 부분은 사람 귀에 소리라기보다 진동처럼 느껴질 수준이다. 덩치가 큰 만큼 발성 기관도 크니 자연스럽게 낮고 굵은 소리가 나온다.

고래 소리가 멀리 가는 건 단순히 커서가 아니라, 낮아서다. 같은 크기라면 저음이 고음보다 훨씬 먼 거리를 간다.

물론 크기도 엄청나다. 대왕고래 소리는 지구상 동물이 내는 소리 중 가장 큰 편에 속한다. 다만 기사에서 흔히 보는 "180데시벨" 같은 숫자는 물속 기준으로 잰 값이라, 공기 중의 데시벨과 그대로 비교하면 안 된다. 기준값과 매질이 달라서 공기 중 수치로 바꾸면 대략 60 정도를 빼야 비슷해진다. 그래도 제트기 엔진에 맞먹는 수준이니 크긴 크다.

바닷속에는 소리의 고속도로가 있다

가장 놀라웠던 건 바다 깊은 곳에 소리가 유독 멀리 뻗어나가는 층이 따로 있다는 거였다. 이 층을 SOFAR 채널이라고 부른다.

원리는 이렇다. 바닷물 속 소리의 속도는 수온이 높을수록, 그리고 수압이 높을수록 빨라진다. 바다 위쪽은 물이 따뜻해서 소리가 빠르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수온이 떨어지면서 소리가 느려진다. 그런데 더 깊이 들어가면 이번엔 수압이 커지면서 다시 소리가 빨라진다. 그 사이 어딘가, 중위도 바다 기준으로 대략 수심 1km 안팎에 소리가 가장 느린 층이 생긴다.

소리는 빠른 곳에서 느린 곳 쪽으로 휘어지는 성질이 있다. 그래서 이 층에서 위로 가려던 소리도, 아래로 가려던 소리도 다시 층 안쪽으로 휘어져 돌아온다. 소리가 위아래로 새지 않고 한 층 안에 갇힌 채 쭉 나아가는 거다. 광섬유 안에서 빛이 빠져나가지 않고 멀리 가는 것과 비슷하다. 이 통로를 따라가면 소리가 수천 km 떨어진 곳에서도 잡힌다.

수심에 따라 소리 속도가 달라지며 생기는 바닷속 SOFAR 채널

이 층은 1940년대 미국 과학자들이 처음 확인했고, 처음엔 군사용으로 먼저 쓰였다. 바다에 추락한 조종사가 작은 폭약을 떨어뜨리면 그 소리가 이 층을 타고 멀리 떨어진 수신소까지 전달돼 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 냉전 시기에는 잠수함을 감시하려고 바닷속에 수중 마이크를 깔았는데, 여기에 의도치 않게 고래 소리가 엄청나게 녹음됐다.

그럼 고래가 이 층을 일부러 쓰는 걸까. 1970년대에 고래 소리가 이 통로를 타면 대양을 건너 소통할 수도 있다는 가설이 나왔는데, 고래가 정말 의도적으로 그 수심까지 내려가서 소리를 낸다는 증거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다만 큰 고래들의 저음이 이런 바다 구조 덕분에 엄청난 거리를 갈 수 있다는 것 자체는 분명하다.

고래 소리는 노래이기도 하다

고래 소리 하면 혹등고래를 빼놓을 수 없다. 1970년대 초 과학자들이 혹등고래 소리를 분석하다가, 이 소리가 일정한 패턴이 반복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짧은 소리 단위가 모여 구절이 되고, 구절이 모여 주제가 되고, 그게 이어져 길게는 수십 분짜리 노래가 된다. 이 녹음을 담은 음반이 큰 인기를 끌면서 고래 보호 운동이 퍼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노래를 부르는 건 주로 수컷이고, 같은 해역 무리는 비슷한 노래를 부른다. 더 흥미로운 건 이 노래가 유행처럼 번진다는 점이다. 남태평양에서는 한 무리의 새 노래가 몇 년에 걸쳐 동쪽의 다른 무리들로 차례차례 퍼져나간 사례가 관찰됐다. 사람으로 치면 유행가가 나라를 건너 퍼지는 것과 비슷하다.

조금 다른 의미로 유명한 고래도 있다. 1989년부터 수중 마이크에 잡히기 시작한 이른바 52헤르츠 고래다. 비슷한 종의 고래들은 보통 10~20Hz대 소리를 내는데, 이 고래는 유독 52Hz라는 높은 소리로 운다. 아직 어떤 종인지도, 정확히 어떤 개체인지도 확인되지 않아서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라는 별명이 붙었다. 다른 고래들이 이 소리를 정말 못 알아듣는지는 알 수 없지만, 소리가 고래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이야기다.

조건별로 정리해보면

고래 소리가 멀리 가는 데는 여러 조건이 겹쳐 있다. 한 번에 보기 좋게 정리하면 이렇다.

조건 전달 거리에 미치는 영향
물이라는 매질 공기보다 4배 이상 빠르고 에너지 손실이 적음
10~40Hz의 저음 바닷물에 잘 흡수되지 않아 멀리 감
SOFAR 채널 소리가 위아래로 새지 않고 한 층을 따라 이동
주변 소음 선박 소음이 많을수록 실제로 들리는 거리는 줄어듦

바다가 점점 시끄러워지고 있다

여기서 씁쓸한 얘기가 나온다. 대형 화물선 엔진과 프로펠러가 내는 소음이 하필 큰 고래들이 쓰는 저음 대역과 겹친다. 바다를 오가는 배가 늘면서 지난 수십 년 동안 바닷속 저음 소음이 꾸준히 커졌다는 측정 결과가 여러 해역에서 나왔다. 고래 소리가 닿을 수 있는 거리가 그만큼 줄어든 셈이다. 사람으로 치면 시끄러운 공사장 옆에서 계속 대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게 고래에게 실제로 스트레스가 된다는 걸 보여준 사례도 있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미국 동부 해안의 선박 운항이 며칠간 크게 줄었을 때, 마침 그 해역에서 북대서양참고래를 연구하던 팀이 있었다. 바닷속 소음이 눈에 띄게 줄어든 그 기간에 고래 배설물에서 측정한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도 함께 떨어졌다. 우연히 생긴 조용한 며칠이 소음의 영향을 보여준 셈이다. 고래들이 시끄러운 곳에서 소리를 더 크게 내거나 소음이 덜한 시간을 골라 우는 모습도 관찰된다.

다행히 해결책도 논의되고 있다. 선박이 속도를 조금만 줄여도 소음이 꽤 줄어든다. 그래서 일부 항구 주변에서는 고래가 많이 다니는 시기에 배들이 자발적으로 감속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국제해사기구도 선박 소음을 줄이기 위한 지침을 내놓았다.

환경과 몸이 맞물려 만든 소리

처음엔 고래가 워낙 크니까 소리도 크게 낼 거라고만 생각했다. 알고 보니 물이라는 매질, 저음이라는 주파수, 바닷속 소리 통로까지 여러 조건이 맞물려야 가능한 일이었다. 고래 한 마리의 울음소리가 수백 km를 간다는 것보다, 자연이 이렇게 정교하게 맞물려 있다는 게 더 신기했다. 그리고 그 정교한 구조를 우리가 만든 소음이 조금씩 흐트러뜨리고 있다는 것도 함께 기억해둘 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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