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궁금한 이야기
하루 종일 듣고도 모르는 소리 5가지, 뇌는 왜 이 소리들을 지워버릴까
냉장고 소리, 내 숨소리, 시계 초침처럼 하루 종일 듣고 있으면서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소리들이 있다. 뇌가 이 소리들을 어떻게 걸러내는지, 그리고 이걸 알면 녹음과 수면, 집중에 어떻게 써먹을 수 있는지 정리했다.
7분 읽기
하루 종일 얼마나 많은 소리를 듣고 사는지 세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가만히 하루를 돌아보니, 수많은 소리를 듣고 있으면서도 정작 제대로 인식한 적은 거의 없었다. 그중에 평소엔 배경처럼 흘려보내던 소리 다섯 개를 일부러 다시 들어봤다. 그리고 왜 이 소리들이 평소엔 안 들리는지도 찾아봤는데, 생각보다 뇌가 꽤 부지런하게 일하고 있었다.
1. 냉장고 소리
집에 냉장고가 켜져 있다는 걸 평소엔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조용히 앉아 있다가 그 낮은 웅웅거림이 갑자기 귀에 들어온 적이 있다. 더 신기한 건 소리가 들릴 때보다 멈출 때 더 확실하게 알아챈다는 거다. 냉장고 모터가 딱 꺼지는 순간 방이 갑자기 조용해진 느낌이 들고, 그제야 아까까지 소리가 나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이건 뇌가 소리 자체보다 소리의 변화에 반응하도록 만들어져 있어서다. 변하지 않고 계속되는 소리는 새로운 정보가 없으니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그러다 그 소리가 멈추면 변화가 생긴 거니까 바로 주의를 끈다.
2. 내 숨소리
숨소리는 태어나서 한 번도 끊긴 적 없는 소리인데, 들으려고 마음먹기 전까진 전혀 인식되지 않는다. 조용한 방에서 눈을 감고 몇 분만 집중해보면 생각보다 크게 들려서 오히려 놀란다.
숨소리가 특히 잘 안 들리는 이유는 일정하고 예측 가능해서이기도 하지만, 내가 만드는 소리라서이기도 하다. 뇌는 내 몸이 움직일 때 어떤 소리가 날지 미리 예측하고, 실제로 그 소리가 들어오면 반응을 줄인다. 내가 나를 간지럽히면 간지럽지 않은 것과 비슷한 원리다. 그래서 내 목소리나 숨소리, 발소리는 남이 내는 같은 소리보다 덜 크게 느껴진다.
3. 걸을 때 옷이 스치는 소리
걸을 때마다 소매나 바짓단이 스치며 나는 미세한 소리도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산다. 그런데 이어폰 없이 조용한 밤길을 걸어보면 이 소리가 은근히 리듬감 있게 들린다. 발소리와 겹쳐서 나는데, 걸음 빠르기나 입은 옷 소재에 따라 소리가 꽤 다르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패딩은 사각거리고, 청바지는 둔탁하고, 트레이닝복은 거의 소리가 없다.
이것도 숨소리처럼 내가 만드는 소리라서 뇌가 알아서 줄여버린다. 재미있는 건 이 소리가 녹음에서는 정말 잘 잡힌다는 점이다. 영상 찍을 때 옷깃에 핀마이크를 달면 이 스치는 소리가 크게 들어가서 골치 아픈데, 정작 촬영하는 동안에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
4. 시계 초침 소리
벽시계가 있는 방에 살면서도 평소엔 초침 소리를 못 듣는다. 그런데 잠이 안 오는 밤이나 뭔가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순간엔 그 소리가 엄청나게 크게 들리기 시작한다. 소리 크기는 그대로인데 내가 받아들이는 크기가 달라진 거다.
긴장하거나 불안할 때 뇌는 주변 소리에 대한 경계 수준을 높인다. 평소엔 무시하던 소리도 혹시 중요한 게 아닌지 다시 확인하기 시작한다. 거기에 다른 할 일이 없어서 주의가 남아돌면, 째깍거리는 규칙적인 소리가 그 빈자리를 차지한다. 그리고 한번 들리기 시작하면 신경이 쓰여서 더 잘 들리는 악순환이 생긴다.
5. 건물 안의 낮은 웅웅거림
사무실이나 카페 같은 실내에는 환기 장치, 형광등, 각종 전자기기가 만드는 낮은 웅웅거림이 항상 깔려 있다. 우리나라 전기는 1초에 60번 방향이 바뀌는 교류라서, 전기 제품에서 나는 웅웅 소리는 60Hz나 그 두 배인 120Hz 근처의 낮은 음인 경우가 많다.
이 소리도 평소엔 안 들린다. 그런데 완전히 조용한 곳에 있다가 다시 들어가면 그 순간에는 확실히 들린다. 그리고 몇 분만 지나면 또 안 들리게 된다. 귀가 소리를 못 듣게 된 게 아니라, 뇌가 이 소리를 다시 배경으로 분류하는 데 몇 분이 걸린 것이다.
다섯 가지를 정리하면
왜 평소엔 안 들리고, 언제 다시 들리는지 정리해보면 이유가 조금씩 다르다.
| 소리 | 평소 안 들리는 이유 | 다시 들리는 순간 |
|---|---|---|
| 냉장고 | 변화 없이 계속되는 소리 | 모터가 꺼지는 순간, 깊은 밤 |
| 숨소리 | 내가 만드는 소리 | 일부러 집중할 때 |
| 옷 스치는 소리 | 내가 만드는 소리 | 조용한 길, 녹음 파일 |
| 시계 초침 | 규칙적이고 위협이 없는 소리 | 불안하거나 잠이 안 올 때 |
| 건물 웅웅거림 | 변화 없이 계속되는 소리 | 조용한 곳에 있다 돌아왔을 때 |
꺼진 게 아니라 볼륨을 줄여둔 것
이쯤 되면 뇌가 이 소리들을 아예 차단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정확히는 그렇지 않다. 시끄러운 식당에서 옆 테이블 대화는 전혀 안 들리다가도, 누가 내 이름을 말하면 귀가 번쩍 뜨이는 경험이 있을 거다. 이걸 칵테일 파티 효과라고 부른다.
뇌는 걸러낸 소리를 완전히 끄지 않는다. 볼륨을 줄여서 배경에 깔아두고, 혹시 중요한 변화가 생기는지 계속 감시하고 있다.
냉장고 소리가 평소와 다르게 덜컹거리면 바로 알아채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익숙한 소리는 무시하되, 그 소리가 이상해지면 즉시 알려주는 거다. 이 필터가 없다면 우리는 하루 종일 냉장고, 환기 장치, 내 숨소리까지 전부 똑같은 크기로 의식하면서 살아야 한다.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이걸 알면 써먹을 수 있는 곳들
뇌가 소리를 걸러낸다는 걸 알고 나서 실제로 도움이 된 부분들이 있다.
- 녹음 전에는 귀가 아니라 녹음 파일을 믿는다. 내 귀에는 조용한 방이어도 마이크는 냉장고, 컴퓨터 팬, 환기 장치 소리를 그대로 담는다. 나레이션이나 목소리를 녹음하기 전에 10초 정도 아무 말 없이 녹음해서 이어폰으로 들어보면, 평소엔 몰랐던 소리가 얼마나 많은지 바로 알 수 있다. 녹음할 때 냉장고 전원을 잠깐 내리는 사람도 많은데, 끝나고 다시 켜는 걸 잊지 않도록 냉장고 문에 메모를 붙여두면 좋다.
- 잠자리에서 시계 소리가 신경 쓰인다면 바꾼다. 초침 소리는 한번 들리기 시작하면 계속 신경 쓰이니, 침실에는 무소음 시계를 두는 게 낫다. 반대로 작은 백색소음을 틀어두면 초침 같은 작은 소리가 묻혀서 덜 거슬린다.
- 집중할 때는 일정한 소리를 활용한다. 뇌는 변하지 않는 소리를 금방 배경으로 보낸다. 그래서 갑자기 들리는 생활 소음보다, 빗소리나 카페 소음처럼 일정하게 이어지는 소리를 작게 깔아두면 오히려 주변 소리에 덜 흔들린다.
- 가끔은 일부러 들어본다. 하루에 1~2분만 눈을 감고 지금 들리는 소리를 하나씩 세어보는 것도 좋다. 처음엔 두세 개밖에 안 들리다가, 조금 지나면 열 개 넘게 들린다. 머리가 복잡할 때 생각을 잠깐 멈추는 데도 꽤 효과가 있었다.
늘 곁에 있었는데 몰랐던 소리들
하나씩 다시 들어보면서 느낀 건, 우리가 못 듣는 게 아니라 뇌가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소리를 미리 골라서 볼륨을 줄여주고 있었다는 거다. 덕분에 정말 중요한 소리에 집중할 수 있다. 오늘 밤 잠들기 전에 잠깐만 귀를 기울여보면, 하루 종일 곁에 있었는데 몰랐던 소리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될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