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궁금한 이야기
귀뚜라미 소리로 기온 알아내는 법, 25초만 세면 섭씨 온도가 나온다
귀뚜라미 울음소리 빠르기로 기온을 알 수 있다는 얘기, 도시전설인 줄 알았는데 1897년에 공식까지 나온 이야기였다. 원리와 직접 계산하는 방법, 그리고 어디까지 믿어도 되는지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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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에 마당에서 귀뚜라미 소리를 듣다가, 귀뚜라미 울음소리 빠르기로 기온을 알 수 있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처음엔 옛날 어른들이 하던 말이나 도시전설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찾아보니 백 년도 더 전에 공식까지 만들어진 이야기였고, 생각보다 근거가 탄탄했다. 직접 세어보기도 하면서 알게 된 걸 정리해봤다.
귀뚜라미는 어떻게 소리를 낼까
귀뚜라미 소리는 목에서 나는 게 아니라 날개에서 난다. 앞날개 한쪽에는 빨래판처럼 오돌토돌한 줄이 있고, 다른 쪽 날개 끝에는 그걸 긁는 단단한 부분이 있다. 날개를 들어 올린 채 좌우로 비비면 이 둘이 마찰하면서 특유의 "귀뚤귀뚤" 소리가 난다. 바이올린 활로 현을 긋는 것과 원리가 비슷하다.
참고로 우는 건 수컷뿐이다. 암컷을 부르거나 다른 수컷에게 자기 영역을 알리려는 소리라서, 암컷 귀뚜라미는 날개에 소리 내는 구조가 아예 없다. 우리가 여름밤에 듣는 그 소리는 전부 수컷들의 구애 노래인 셈이다.
왜 더우면 빨리 울까
핵심은 귀뚜라미가 변온동물이라는 점이다. 사람은 바깥이 덥든 춥든 체온을 36도 언저리로 유지하지만, 귀뚜라미는 몸 온도가 주변 기온을 그대로 따라간다. 그리고 근육이 움직이려면 몸속에서 화학 반응이 일어나야 하는데, 이 반응은 온도가 높을수록 빨라진다.
그래서 따뜻한 밤에는 날개 근육이 빠르게 움직이고 울음 간격도 촘촘해진다. 반대로 서늘해지면 근육이 굼떠지면서 소리가 느릿느릿해진다. 귀뚜라미 기분이 좋아서 빨리 우는 게 아니라, 몸이 물리적으로 그 속도밖에 못 내는 거다. 늦가을로 갈수록 귀뚜라미 소리가 점점 늘어지다가 어느 순간 뚝 끊기는 것도 같은 이유다.
1897년에 나온 공식, 돌베어의 법칙
이 관계를 처음 공식으로 정리한 사람은 미국 물리학자 아모스 돌베어다. 1897년에 "온도계로서의 귀뚜라미"라는 짧은 글을 발표했는데, 여기서 귀뚜라미가 1분에 우는 횟수와 화씨 기온 사이의 관계를 식으로 제시했다. 그래서 지금도 이걸 돌베어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원래 공식은 화씨 기준이라 우리한테는 바로 와닿지 않는다. 섭씨로 바꿔서 쉽게 쓰면 이렇게 된다.
25초 동안 울음 횟수를 센다 → 3으로 나눈다 → 4를 더한다 = 대략적인 섭씨 기온
예를 들어 25초 동안 60번 울었다면 60 ÷ 3 = 20, 여기에 4를 더해서 약 24도가 나온다. 미국에서 흔히 알려진 버전은 "14초 동안 센 횟수에 40을 더하면 화씨 기온"인데, 계산해보면 두 방법이 거의 같은 값을 준다.
| 25초 동안 센 횟수 | 계산 | 추정 기온 |
|---|---|---|
| 42회 | 42 ÷ 3 + 4 | 약 18도 (선선한 밤) |
| 60회 | 60 ÷ 3 + 4 | 약 24도 (보통 여름밤) |
| 72회 | 72 ÷ 3 + 4 | 약 28도 (열대야) |
직접 세어봤더니
궁금해서 스마트폰 스톱워치를 켜놓고 직접 세어본 적이 있다. 해보면 생각보다 어렵다. 여러 마리가 동시에 울면 소리가 겹쳐서 어디까지가 한 번인지 헷갈리고, 숫자를 세다 보면 중간에 놓치기 일쑤다. 몇 번 시도해서 평균을 내보니, 그날 날씨 앱에 뜬 기온이랑 몇 도 차이 안 나게 얼추 맞아서 꽤 신기했다.
해보면서 알게 된 요령을 적어두면 이렇다.
- 한 마리 소리에만 집중한다. 가까이에서 또렷하게 들리는 한 마리를 정해서 그 소리만 센다. 여러 마리를 한꺼번에 세면 숫자가 부풀려진다.
- 두세 번 세어서 평균을 낸다. 한 번만 세면 오차가 크다. 25초씩 세 번 정도 세서 평균을 내면 훨씬 안정적인 값이 나온다.
- 귀뚜라미가 있는 높이의 기온이라는 걸 기억한다. 귀뚜라미는 풀숲이나 땅 가까이에 있어서, 공식으로 나오는 값은 그 위치의 온도에 가깝다. 날씨 앱의 기온과 조금 차이가 나는 게 자연스럽다.
어디까지 믿어도 될까
재밌는 방법이긴 하지만 온도계를 대신할 정도는 아니다. 몇 가지 한계가 있다.
먼저 종류에 따라 차이가 크다. 돌베어의 공식이 가장 잘 맞는 건 북미에 사는 흰나무귀뚜라미라는 종인데, 이 종은 여러 마리가 박자를 맞춰 일정한 리듬으로 우는 특징이 있어서 세기 쉽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듣는 왕귀뚜라미 같은 종은 울음 패턴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공식을 써도 오차가 더 커질 수 있다. 같은 속인 긴꼬리 종류가 그나마 비슷한 편이다.
또 기온이 너무 낮아지면 귀뚜라미가 거의 울지 않고, 너무 높을 때도 일정하게 빨라지지만은 않는다. 개체의 나이나 건강 상태, 바로 옆에 다른 수컷이 있는지 같은 상황에 따라서도 울음 속도가 달라진다. 그러니 정확한 온도라기보다는 "오늘 밤이 선선한지, 꽤 더운지" 가늠하는 용도로 생각하는 게 맞다.
별생각 없이 듣던 소리에 정보가 담겨 있었다
여름밤마다 배경음처럼 흘려듣던 귀뚜라미 소리에 이런 정보가 숨어 있었다는 걸 알고 나니 새삼스러웠다. 그 뒤로는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면 괜히 한번 세어보게 된다. 쓸데없는 습관 같지만, 아이와 함께 해보면 숫자 세기와 나눗셈을 자연스럽게 연습하는 놀이가 되기도 한다. 다음 여름밤에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면 25초만 세어보길 추천한다. 오늘 밤이 몇 도쯤인지 의외로 꽤 맞힐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