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음에 로우패스 필터 하나만 걸어도 거리감이 생긴다
한동안 씬마다 다른 효과음 파일을 계속 구해다 쓰는 방식으로 작업했습니다. 가까운 소리, 먼 소리, 벽 너머 소리를 전부 각각 다른 파일로요. 그런데 어느 순간 소리 하나만 있어도 처리 방식만 바꾸면 여러 상황에 다 쓸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중 가장 효과가 컸던 게 로우패스 필터였습니다.
왜 멀리서 나는 소리는 먹먹하게 들리는가
실제 물리 현상에서 소리가 공기 중을 이동하거나 벽, 문 같은 장애물을 통과하면 고주파 성분이 먼저 감쇠합니다. 그래서 옆방에서 들리는 대화 소리는 웅얼거리는 저음 위주로만 들리고, 멀리서 들리는 폭죽 소리도 가까이서 들을 때보다 훨씬 둔탁합니다. 사람 귀는 이 현상에 익숙해져 있어서, 고주파가 깎인 소리를 들으면 자동으로 "이건 멀리 있거나 뭔가에 막혀 있다"고 인식합니다.
이 원리를 거꾸로 이용하면, 원본 효과음 파일 하나에 로우패스 필터를 걸어서 컷오프 주파수만 낮춰주는 것만으로 "같은 소리인데 멀리서 나는 것처럼" 만들 수 있습니다. 실제로 다른 파일을 구할 필요 없이, 이미 갖고 있는 소리 하나로 여러 거리감을 표현할 수 있다는 뜻이라 작업 시간이 꽤 줄었습니다.
컷오프 주파수를 어느 정도로 잡아야 하는지
바로 옆에서 나는 소리를 기준으로, 벽 하나 너머 정도의 거리감을 주려면 컷오프를 대략 800Hz~1.2kHz 부근으로 잡으면 그럴듯했습니다. 이보다 더 멀리, 예를 들어 두세 개 층 떨어진 느낌을 주고 싶으면 400~600Hz까지 낮춰봤는데, 이 정도면 원본이 뭐였는지 거의 짐작이 안 갈 정도로 뭉개집니다. 그래서 너무 과하게 낮추기보다는, 무슨 소리인지는 알아들을 수 있는 선에서 멈추는 게 중요했습니다.
정확한 수치보다 중요한 건 사실 상대적인 감각이었습니다. 씬 안에 "가까운 소리"와 "먼 소리"가 같이 나온다면, 그 둘의 컷오프 차이가 크게 벌어질수록 거리 대비가 더 뚜렷하게 느껴졌습니다.
볼륨을 낮추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효과
처음엔 그냥 볼륨만 낮추면 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직접 비교해보니 전혀 다른 인상을 줬습니다. 볼륨만 낮춘 소리는 "작지만 선명한" 소리로 들려서, 오히려 가까이 있는데 작게 말하는 느낌에 가까웠습니다. 반면 로우패스를 걸고 볼륨도 같이 낮춘 소리는 확실히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줬습니다. 거리감은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주파수 성분의 문제라는 걸 이 비교를 통해 확실히 체감했습니다.
과하게 쓰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이 방법에 재미를 붙이고 나서 한동안 씬 대부분의 배경 요소에 로우패스를 걸었던 적이 있는데, 결과물을 다시 들어보니 전체적으로 먹먹하고 답답한 느낌이 강했습니다. 거리감을 표현해야 하는 요소에만 선택적으로 써야지, 전체 밸런스를 위해 무분별하게 적용하면 오히려 믹스 전체의 선명도가 떨어집니다. 지금은 "이 소리가 화면에서 멀리 있다는 걸 명확히 알려줘야 하는 순간"에만 의도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문이나 벽 너머 소리에도 응용
거리뿐 아니라 문 닫힌 방 너머의 소리, 차 안에서 듣는 바깥 소리를 표현할 때도 같은 원리가 통했습니다. 이런 경우엔 로우패스와 함께 볼륨을 확실히 줄이고, 약간의 리버브를 더해주면 "막혀 있는 공간 너머"라는 느낌이 한층 더 살아났습니다. 필터 하나만으로 끝내기보다, 상황에 따라 리버브나 볼륨 조정을 같이 조합하는 게 결과적으로 훨씬 설득력 있었습니다.